2009년 01월 11일
<오르쾨르텐 이야기> 마지막편(?)
넵. 몇 달간 연재해 오던 <오르쾨르텐 이야기> 마지막편(?)입니다.
마지막편 뒤에 왜 물음표를 붙이는고 하니,
사실 이게 마지막편이라기보다 연재 중단되기 전에 쓴 마지막 편이라서 그렇습니다.
여기까지는 제가 쓴 내용이고, 이 다음은 레이리양이 쓸 차례였는데, 어쩌다 보니 다음 편을 쓰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언젠가는 다음 편이 나올... 가능성은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할 수는 있지 않을까요? (....)
이번 편은 다소 깁니다. 그래도 한 사건은 매듭지어지는 데에서 끝내서 다행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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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츠미야 후작 부인이 연 파티는 대성황이었다. 본디 소츠미야 후작 부인은 시끌벅적한 것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파티를 열더라도 그리 규모가 크지 않고 조용하게 열기로 유명했는데, 오늘 파티에는 평소 차분한 위엄을 가진, 그 엄전한 소츠미야 후작 부인 그 사람이 초대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있었다. 덕분에, 아테트라이에나는 각처 명문가의 자제들에게 둘러싸여 인사를 받느라고, 정작 중요한 아데크레노헨은 어디에 있는지도 확인할 수 없었다.
그렇게 소란함 속에서 끝도 없이 되풀이되는 인사와 몸 걱정, 심기 걱정에 답례를 하느라 지쳐버린 아테트라이에나가, 결국에는 머리가 아프니 혼자 내버려둬 달라는 핑계를 대고 구석 자리에 있는 소파에 가서 어깨를 기댄 것은, 그녀가 도착한 지 이미 한참이 지나서였다.
아테트라이에나는 하늘색 비단에 작은 진주와 보석이 무늬를 이루어 정성스레 수놓여 있는 아름다운 드레스가 구겨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상체를 이리저리 돌리어 아데크레노헨이 어디 있는지를 찾았다. 사실, 파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지쳐 버린 아테트라이에나는, 찾는 것은 시늉뿐이고 소파의 푹신함을 느끼고 싶을 뿐이었다. 화려한 드레스 자락과 살짝 드러난 수제 레이스가 장식된 페티코트 밑에, 푸른 벨벳에 싸인 자신의 조그마한 발이 내려다보였다.
‘이 구두도, 이제 한두 달 후면 더워서 못 신게 되겠구나.’
아테트라이에나가 완전히 넋을 놓은 채,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잡생각들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런 대로 찾으려고 애쓸 때는 보이지 않던 아데크레노헨이, 무신경하게 움직이던 아테트라이에나의 시선에 잡힌 것이다.
의외였다. 최상류층 귀족들을 상대로 무리한 수사를 강행하고, 아테트라이에나를 용의자로 지목함으로써 완전히 미움받게 된 줄 알았던 아데크레노헨, 그 아데크레노헨을 상대해 주는 귀족들이 있는 것이었다. 아니, 상대해 주는 귀족들이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아데크레노헨은 오히려 가만히 있는데, 그런 그에게 사람들이 일부러 말을 붙이며 다가갔다. 더구나 그의 주변에는 그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 기다리는 듯한 사람도 몇 보였다.
아테트라이에나는 혼란스러웠다. 다들 어떻게 된 거야? 저런 무례한 이방인을, 어째서 이렇게 친절히 상대해 주는 거야? 아테트라이에나는 반쯤은 의무감에서 화를 냈다. 그러나, 그것도 어쩐지 마음대로 되지 않자, 이번에는 자신의 모질지 못한 심보에 대해 화를 내 보려고 하던 참이었다. 아데크레노헨 주변에서 웃고 있던 한 젊은 남자가 아테트라이에나와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그곳을 떠서 아테트라이에나 곁으로 다가왔다.
아테트라이에나는 그를 알고 있었다. 중키에 곱슬머리, 약간 처진 듯한 잿빛 눈, 평범한 인상의 사나이로, 꽤 큰 영지를 가진 백작의 아들이었다. 게다가, 아테트라이에나의 숭배자 중 한 사람이었다. 아테트라이에나는 제발, 말은 걸지 말아달라고 생각하면서도 그가 보내는 어색한 미소에 답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따라 더욱 아름다우십니다, 라일런즈 양. 어찌 그 때 파티에서 무리하셨다던데 그 이후로 용태는 좀…….”
그는 결국, 어쩐지 비슬비슬한 미소를 띄우며 말을 붙였다. 그는 당시 왕실 파티에 초대받지 못했었다. 재산은 좀 있으나, 최상층만 모이는 파티에 초대될 만한 지체는 아니었던 것이다.
“고맙습니다, 제프본 씨. 덕분에 이제는 많이 좋아졌어요.”
마흔 두 번째다, 이 대사. 아테트라이에나는 말과 다르게 피곤한 기색을 얼굴에 떠올리려고 나름대로 애썼다. 임무(?)에도 별로 충실하고 있지 않던 이 시점에, 말을 붙여오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상대해 주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상대방은 어떻게 해서든 아테트라이에나와 이야기를 잇고 싶은 모양이었다. 묻지도 않은 말이 입에서 술술 나온다.
“저어, 제가 페리노에라 씨와 이야기를 했다고, 라일런즈 양에 대한 제 마음이 소홀한 것이라든가 하는 생각은 하지 않으시겠지요? ……물론 저도 저 분, 아니, …녀석이 싫습니다! …그러나 어디 인간관계라는 게 솔직한 성정만으로 되는 거던가요. 아무리 해도, 왕자비님의 은인으로 왕자님과 왕녀님의 신망을 한몸에 받고 있는 데다가, 아스페라노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체르에이유 공작가까지 업고 있고, 거기다 전 오르쾨르텐에서 가장 뛰어난 학자라는 르 뵈시 부부와 막역지간이라니……, 우리 같은 사람이야 뭐가 어찌 됐든 적으로 돌려선 안 될 사람 아니겠습니까.”
이해해 달라는 듯이 눈웃음을 치며 열심히 말하는 태가 어딘지 비굴하다. 아테트라이에나는 아무리 자신의 적이나 다름없는 아데크레노헨이지만 바로 눈앞에서 보이지 않는다고 뒤에서 험담하는-그것도 맘에도 없는 것을 남을 의식해서 일부러- 이 남자가 싫었지만, 어쨌거나 아데크레노헨에 대한 정보는 필요했으므로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게다가, 저 …녀석, 어째 벌써 네젯 후작가에도 손을 뻗치고 있는 것 같더군요. 이건 소문이니까 라일런즈 양이 현명히 판단하셔서 믿을지 여부를 결정하시고 남의 귀에 옮겨놓지는 마십시오. 아 글쎄, 네젯 후작가의 영애, 네젯 양이 벌써 페리노에라 씨에게 반한 눈치라더군요.”
‘카이올레이네가?’
아스페라노덴의 상류층 귀족들이라면 으레, 사교계의 주요한 인사들끼리 거의 모두 매우 잘 아는 사이인 것이 통례였다. 특히 자신 또래라면, 이성이라면 결혼이나 연애 상대로, 동성이라면 우정과 경쟁의 상대로 상세히 알고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아스페라노덴 사교계의 여왕이나 다름없는 아테트라이에나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카이올레이네 레드네도르 네젯. 올해 열아홉 살로, 아테트라이에나보다는 한 살이 위다. 보통 이상의 미모와 풍부한 교양을 갖추었음에도, 애교와 눈치와 말솜씨가 부족해서 그리 큰 인기를 끌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녀를 좋아하는 소수파들은 꽤나 열성적이라고 한다. 사교계의 스타 중 하나인 헤르카다도 그녀를 사랑한다는 가십이 떠돌고 있음. 감수성이 풍부하고 마음씨가 따뜻하지만 남의 이목에 휘둘리기 쉬운 타입으로, 자신의 그릇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높은 지체를 짊어지기 위해 상당히 애쓰고 있는 것으로 보임.
아테트라이에나의 머릿속에 순간적으로 카이올레이네의 정보가 정리되었다. 나는 역시 명민해, 그녀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띄울 즈음에도, 제프본의 말은 계속되고 있었다.
“글쎄 페리노에라 씨의 수사를 돕겠다고 그때 기절한 궁녀랑 이야기를 하지를 않나, 페리노에라 씨를 만나기 위해서 체르에이유 저택을 일부러 방문한 적도 있었다나요. 아무튼, 하나밖에 없는 딸이 예뻐서 그런지 몰라도 네젯 후작 역시 페리노에라를 아주 몹쓸 놈으로 보지는 않는 것 같답니다. 하긴 그 분도 소싯적엔 북동쪽 대륙으로 유학하겠다고 고집도 써 보고 하셨으니 그쪽 방식에 아주 관심이 없는 것도 아니겠지요.”
제프본은 어느덧 아테트라이에나와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스스로 자기 이야기에 취해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동시에, 아테트라이에나의 머리는 또 따로 빠르게 돌고 있었다. 제프본은 생각보다 발이 넓고 정보 수집에 능한 것 같다. 이건 의외인데.
“네젯 후작가가 또 어떤 집안입니까. 말이 후작이지, 공작이나 다름없는 지체를 자랑하는 집안 아닙니까? 영지도 엄청나고, 바로 돌아가신 선(先) 네젯 후작께서 예술을 그리 사랑하시어 보유하고 있는 고미술품이며 골동품도 엄청나다더군요. 그런 가문까지 페리노에라 씨에게 돌아섰다고 한다면……. 페리노에라 씨도 수이 볼 상대는 못 되지요. 라일런즈 양도 아시다시피 아스페라노덴이라는 곳이, 게다가 사교계라는 것이 세력 강한 몇몇 사람들의 몇 마디로 좌지우지되는 곳 아닙니까? 페리노에라 씨가 어쩌다가 이 댁의 소츠미야 후작 부처까지 자기 편으로 만들기라도 하면 그건 뭐 말할 것도 없지요. 속으로는 어떻게 생각하든, 모두들 페리노에라 씨를 만나지 못해 안달이 날 겁니다. 하하하핫.”
처음의 비굴함은 간 데 없이 사라지고, 얼굴에는 쾌활함이 감도는 제프본이었다. 처음에는 페리노에라가 싫다고 했지만 말을 들어 보면 오히려 어느 편도 아니고 사태를 관망하며 즐기는 태도, 사실 백작 중에서도 지체가 낮은 그에게 최상층 귀족들의 세력 향방은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었고, 또 그 자신도 지체에 관한 한 그다지 강박관념이 없었기 때문에 상황을 웃으면서 관망할 수 있었던 것, 게다가 왕궁 파티에서 발이 묶인다든가 소지품 검사를 당한 경험도 없는 그로서는 페리노에라를 미워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오히려, 비교적 낮은 지체의 귀족으로서, 세도가 하늘을 찌르는 최상층 귀족들이 저 남자의 말 한 마디에 불평은 할지언정 꼼짝 못했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아 보였다.
그건 그렇다고 해도, 상황이 이렇게 아데크레노헨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다니, 아테트라이에나로서는 김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자신을 일껏 고생시킨 몹쓸 이방인이 좀 욕도 먹고 핍박도 당했으면 가엾은 생각이라도 나서 어떻게 살려두고 싶은 마음이 생길 텐데, 저렇게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태연히 미소짓고 있다니 가엾게 여기려도 그럴 수가 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이제는 이 도시의 분위기에 익숙해졌는지, 왕실 디자이너 제아노아렌 부인의 옷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소화하고, 높은 귀족들과 이야기하는 얼굴도 편안했다. 더군다나 오늘은, 왕가는 물론 체르에이유 가 사람이나 하다못해 카이올레이네 등 어떠한 버팀목도 곁에 없는 혼자였는데도, 날개 꺾인 천애고아는커녕 저토록 여유있는 태도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지 않은가. 아테트라이에나는 심술이 나서, 하마터면 제프본 앞에서 얼굴을 찌푸릴 뻔했다.
“아, 저, 그건 그렇고, 라일런즈 양.”
제프본이 그 어색한 미소를 다시 내비치며 화제를 옮겼다. 자신이 장광설을 늘어놓는 동안 아테트라이에나가 가타부타 말도 없이 종내에는 아데크레노헨 쪽으로 시선을 보내고 있자 머쓱해진 것이다.
“오늘 파티에, 사람들이 참 많죠?”
“네, 그러네요.”
아테트라이에나는 건성으로 대답하다가 순간 귀가 솔깃해져서 제프본을 돌아다보았다. 소츠미야 부인답지 않은 이 파티의 인원이, 사실 아테트라이에나 자신도 궁금하던 차였다.
“초대장 없이 온 사람들이……많거든요.”
제프본은 말하다 말고 말꼬리를 흐렸다. 아테트라이에나는 그 역시 초대장 없이 왔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했다.
“사실 오늘 이 파티에서, 라오네드 공작 부인이 새로 입수한 귀중한 돌을 공개할 예정이랍니다.”
제프본은 중요한 사실을 비밀스럽게 전하듯, 혹은 초대장 없이 왔다는 무안함을 무마하듯 빠르게 말을 이었다.
“왕실 파티 이후에 한 번 열렸던 큰 파티 기억하세요? 누구 댁이었더라……. 하여튼 그 파티에 라오네드 공작 부인도 참석했는데, 거기서 부인이 말씀하셨거든요. 이러이러한 귀중한 것을 손에 넣었노라고, 자신이 다음 번 초대받는 파티에서 그걸 공개하겠노라고. 그리고선 당신께선 이것을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니 보고 싶으면 누구라도 와서 보라고 공언하셨더랬지요. 그런데 시기상 그 다음이 될 만한 파티는 전부터 예정된 이 파티뿐이었거든요. 덕분에 소츠미야 부인이 계획한 파티보다 규모가 상당히 커져 버렸지만.”
그러고 보니 제프본의 어깨 너머로 라오네드 공작 부부의 모습이 보였다. 이미 환갑을 바라보는 노부부. 라오네드 공작은 왕궁 파티 당시 떨치고 일어나 아데크레노헨에게 일갈을 가했던 바로 그 노신사였다. 연륜과 세도와 입바른 성미로, 언제든 하고 싶은 말은 해 버리고 마는 꼬장꼬장한 늙은이라고 할까. 보수적인 성격에 엄격하게도 정직해서, 전통이니 가문이니를 중시하는 아스페라노덴의 온갖 격식을 응고시켜 만들어 놓은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반면 공작 부인은 치장을 좋아하고 안존치 못한, 비대한 여인이었다. 보수적인 남편과 선뜻 어울리지 않는 가벼운 행동을 하곤 하며, 사치도 심했다. 그러나, 강단 있고 주장이 강해 만만하게 볼 여자는 아니었고, 공작 부인이라는 지위에 먹칠하는 경박함 따위는 없었다. 적어도 사교계 내에서, 그녀의 목소리는 남편 못지 않은 영향력이 있었다.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고 말수도 적은 편이 아닌 이 귀부인은, 작지 않은 핸드백을 걸고 있는 왼쪽 팔을 종종 들어올렸다. 마치 무게를 재듯이.
‘저 안에 그 물건이 들어 있나 보지. 어지간히도 귀중한 물건인가 보네. 없어질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잖아?’
치장을 좋아하니만큼 아스페라노덴의 누구보다 사치스런 생활을 하는 공작 부인이 이렇게 마음 쓰는 물건이라니, 아테트라이에나도 점차 그 돌에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드디어, 홀 중앙에 마련된 단상 위에 소츠미야 후작 부인이 올라섰다. 그녀는 파티에 참가한 방문객들에게 간단히 사의를 표하고, 라오네드 공작 부부를 소개한 후 공작 부인을 단상의 중앙에 불렀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라오네드 공작 부인이 분위기를 이끌게 되었다.
“오늘 어렵게 모이신 아스페라노덴의 보석 같은 신사 숙녀 여러분, 저는 방금 소개받은 것처럼, 라오네드 공작가의 안살림을 맡고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 제가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은, 일전에 제가 말씀드린 대로, 여간해서는 보기 힘든 귀중한 돌을 입수할 기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크고 무거운 돌의 유래는 너무도 길고 복잡하여 이 자리에서 모두 밝히기는 어렵겠지만, 그것의 아름다움은 여기 있는 모든 분들과 함께 나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아름다우신 소츠미야 후작 부인께서 여시는 파티에 이렇듯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말솜씨가 뛰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태도가 당당하여 사람이 크게 보인다. 공작 부인은 미소 띤 얼굴로 좌중을 일별한 뒤 자랑스럽게 핸드백을 들어올려 단상 앞에 준비된 탁자에 놓고, 핸드백을 연 후 붉은 벨벳으로 만들어진 주머니를 꺼내 들었다.
축배를 들듯 그 묵직한 주머니를 한 번 들어보인 공작부인은 이윽고 주머니의 입구를 열고 조심스럽게 돌을 꺼내 들었다.
그 돌은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주먹만한 회색 정원석이었다.
졸지에 파티는 엉망이 되어 버렸다. 좌중과 특히, 파티를 주최한 소츠미야 가에서 놀란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엄전하기로 소문난 소츠미야 부인까지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며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애를 썼다. 그럼에도, 돌이 바꿔치기 된 것을 안 지 한참 지난 시점까지도 어떠한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 요는 라오네드 공작 부인의 돌이 바꿔치기 된, 다시 말해 도난당한 것이다. 그런데 언제? 어디서?
안절부절못하는 좌중과는 달리 정작 사건의 피해 당사자인 라오네드 공작 부부는 침착한 편이었다. 워낙 보수적이고 체면을 중시하는 공작은 당연하다 쳐도, 평소의 떠들썩한 성미로 미루어 대소란을 피우지 않을까 일변 염려되었던 공작 부인도 침착하게 입술을 깨문 채 상황을 정리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표면적으로는 활기를 되찾은 듯한 파티장을 잠잠히 살펴보고 있었다. 아니, 차라리 노려보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았다. 불안함을 감춘 채 옆 사람과의 잡담에 필요 이상으로 열을 올리는 사람들을 찬찬히 관찰하며, 누군가가 자리를 뜨기라도 하면 눈을 가늘게 좁히며 작게 신음 소리를 뱉곤 했다. 그것은 라오네드 공작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보.”
라오네드 공작 부인이 답답함을 못 이기는 듯 한숨을 내쉬며 작은 소리로 남편을 불렀다.
“우리끼리 얘기지만……, 할 수만 있다면 여기 있는 사람들을 다 못 나가게 잡아 놓고, 몸에 지닌 모든 공간을 조사해 보고 싶은 심정이에요. 이 저택을 이 잡듯 샅샅이 뒤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요.”
라오네드 공작이 못마땅한 듯이 헛기침을 했다. 그러나 꼬장꼬장하고 남의 작은 실수에도 훈계를 잊지 않는 공작의 성미로 미루어, 그러한 반응은 오히려 그 역시 부인의 그러한 의견에 강하게 동조하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맞을 성싶었다.
“혹시라도 집에서 잘못 가지고 온 것은 아니오? 여기서 바뀐 것이 확실하오?”
“그럼요.”
공작 부인이 강하게 긍정했다.
“아까도 소츠미야 부인 앞에서 이야기했잖아요? 아침에 함에 있던 보석을 벨벳 주머니에 직접 넣은 것이 바로 저예요. 그리고 나서 필요한 것들을 모두 챙겨 넣고, 향수까지 뿌린 후에 여기 있는 로체에게 마차에 갖다 놓으라고 시켰구요.”
공작 부인은 자신의 옆에 얼이 빠진 듯 서 있는 하녀를 가리켰다.
“그 다음에는 바로 마차를 타고 이곳으로 왔잖아요? 당신도 그 때 있었구요.”
“뭔가 이상한 일은 없었나 잘 생각해 보구려. 자세하게 생각해 보란 말이오.”
공작 부인은 짜증이 나는 듯 이맛살을 살짝 찌푸렸다.
“돌이 없어진 것을 안 직후에 소츠미야 부인하고 얘기한 것보다 더 자세하게, 어떻게 말이에요? 핸드백을 준비한 다음 잠시 치장을 점검했고, 마차에 올랐고, 따로 출발하기로 되어 있던 당신이 준비를 서둘러서 우리 마차에 같이 탔고, 그리고는 여기에 도착했다고요. 이 정도면, 누군가가 그 때의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가 지금 이야기해 준다고 해도 더 자세하게 말하지 못할 거예요.”
공작은 짜증이 묻어나는 부인의 말투에 잠깐 엄한 눈으로 주의를 주다가 다시 입을 꾹 다문 채 생각에 잠겼다.
“아주 사소한 것도 단서가 될지도 모르오…….”
공작은 인상을 쓰며 생각을 집중하려고 애썼다. 그의 진지하고도 화가 난 듯한 눈동자는 때때로 아데크레노헨에게 향했다. 공작은 몇 번이나 그 쪽을 향하다가 다시 돌아서고, 돌아서곤 했다.
그렇게 또 시간이 지난 후였다. 라오네드 공작 부부는 피곤함이 역력히 묻어나는 모습이었고 소츠미야 후작 부인 역시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손님들 역시 귀족의 체면 때문에 애써 불편함을 감추고 웃으며 떠들고 있을 뿐이었다. 아테트라이에나를 둘러싼 몇몇의 청년들은 별로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지만.
그 때, 소츠미야 가의 수석 하녀가 빠른 걸음으로 자신의 상전에게 가서 귀엣말로 몇 마디를 전했다. 그 전언을 들은 소츠미야 부인은 어딘지 석연치 않은 듯한, 반신반의하는 얼굴로 라오네드 공작 부부에게 향했고, 소츠미야 부인으로부터 다시 전언을 받은 라오네드 공작 부부는 깜짝 놀란 얼굴로, 후작 부인을 거치지도 않고 소츠미야 가의 수석 하녀에게 무엇인가를 지시했다. 머뭇거리다가 후작 부인의 재촉을 받은 하녀가 서둘러 홀을 빠져나간 후 몇 분 뒤였다.
말쑥하게 차려 입은, 그러나 호화롭게 차려 입은 홀 안의 귀족들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한 차림의 하인 한 사람이 홀 안으로 들어섰다. 마부인지, 허리춤에는 말 채찍까지 꽂혀 있는 채였다.
홀 안은 금세 술렁이기 시작했다. 지체 높은 귀족이 모이는 파티에는, 숙녀들의 몸시중을 드는 하녀나 손님들의 시중을 들어줄 파티 주최인의 아랫사람들이 아니라면 차마 지체 낮은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심지어 후작가의 파티에는 자작이나 남작도 주위를 살피며 입장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디서 마부 따위가 파티홀에 들어올 생각을?
많은 숙녀들이 이맛살을 찌푸렸고 젊은 귀족 몇몇은 드러내놓고 불쾌함을 표현하기도 했다. 아테트라이에나 주변의 청년들은 그렇지 않아도 잔뜩 겁에 질린 마부가 무슨 무서운 죄인이나 환자라도 된 것처럼 그녀를 막아서고 나섰다.
“여러분, 잠시 양해를 구합니다.”
소츠미야 후작 부인이 손을 들어 파티홀 안을 진정시켰다. 술렁이던 홀 안이 어느 정도 잠잠해진 틈을 타서 부인은 말을 이었다.
“고귀한 분들이 모인 홀 안에 낮은 지체의 하인이 감히 들어온 것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불쾌해하실 줄은 압니다마는, 그럼에도 좀전의 불상사를 해결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이므로 많은 고귀한 분들의 하해와 같은 이해심을 잠시 구하기로 했습니다. 지금 들어온 자는 존경받아 마땅한 라오네드 공작가의 덕을 입고 있는 마부로, 이 파티의 초반에 많은 분들께 걱정을 끼친 일단의 사건과 관해 여러분께 실례를 끼치게 되었습니다.”
소츠미야 부인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그러는 동안 마부는 쭈뼛거리며 라오네드 공작 부부에게 다가가 묵직한 주머니를 내밀었다.
라오네드 공작은 그것을 받아 그 자리에서 당장 열어 안에 든 것을 꺼내 보았다.
일순 주변에 정적이 흘렀다.
그것은 그 안의 어느 누구도 일찌기 본 적이 없는 아름다운 돌이었다. 주먹만한 크기에, 겉은 아주 매끄럽고 맑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그것이 돌 안을 안개가 낀 듯이 환상적인 모습으로 보이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개 낀 듯한 표면 안에, 황금빛 섞인 붉은 색이 스스로 은은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고, 일견 돌 안의 결정이 어긋난 듯한 부분들에서는 외부에서 비쳐 들어가는 빛이 여러 각도로 반사되어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보다 가장 돌을 신비롭게 보이게 하는 것은, 아른거리는 돌 너머로 배어나오는 색채가 응결된 것이 마치 한 마리의 새를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탄성이 흘렀다. 방금 전의 불쾌감이나 경계심뿐 아니라 라오네드 공작의 보물이 없어지고부터 홀 안을 짓누르고 있던 무거운 공기까지 순식간에 사라진 듯, 귀족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돌의 아름다움에 대해 앞을 다투어 경탄의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 틈에 어느덧 라오네드 공작 부부로부터 멀어진 마부는, 역시나 쭈뼛거리며 슬슬 홀의 입구 쪽으로 걸음을 떼어놓기 시작했다. 그것을 눈치챈 것은 라오네드 공작이었다.
“잠깐, 마부. 거기 서게.”
공작의 말투는 점잖으나, 단호한 목소리는 파티홀 구석구석을 울렸다. 공작 부인의 손 위에 올려진 돌에 감탄하던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공작에게 쏠렸다.
“이 돌을 전하라고 한낱 마부를 이 파티홀 안까지 들어오게 하진 않아. 자, 이제 말해 보게. 이 돌이 어디서 났지?”
마부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쳐갔다. 그는 자신을 도와줄 만한 사람을 찾기라도 하는 것인지 무의식중에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사방에서 쏟아지는 시선은 진실을 추궁하는 날카로운 것뿐이었다.
“왜 말을 못 하나? 혹시 자신이 손을 대고선 이제 와서 후회가 되어…….”
“아닙니다! 소인 그런 짓 하지 않습니다!”
마부의 순박한 얼굴이 순식간에 울상이 되었다. 그러나 엄격한 공작은 이맛살을 찌푸리고 마부에게 일갈했다.
“상전이 하는 말 허리를 자르라고 누가 가르치던가!!”
라오네드 공작은 깜짝 놀라 어깨를 움츠리는 마부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며 말을 이었다.
“마부, 지금 이렇게 분에 맞지 않는 자리에 불려와서 떨면서까지 보물을 돌려준 것으로 봐서, 네가 이 물건에 손을 댔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내 눈에 들기 위해 자작극을 펼칠 만한 두뇌도 지체도 네겐 없어. 그리고 그와 같은 맥락으로, 이 돌이 있었던 곳을 전혀 몰랐던 네가 스스로의 머리를 써서 이것이 어디에 있었는지 알았다고도 생각할 수 없다. 그렇다면, 너는 범인이 이 돌을 숨긴 것을 어떤 계기에선지 알고 찾아내어 가져왔거나, 아니면 누군가에게 이 돌이 숨겨져 있는 장소를 듣고 그 자 대신 이것을 가져왔다고 생각할 수 있을 텐데……, 어떤 경우에든지 내게 할 말은 있겠지. 자, 범인은 누군가? 아니면, 네게 이 돌의 위치를 가르쳐 준 사람은 누군가?”
불쌍한 마부는 이미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짧은 순간의 판단으로서는 놀랄 만큼 조리 있고 명석한 라오네드 공작의 질문이었다. 마부는 다시 한 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그의 떨리는 시선을 받아치는 것은 한결같이 대답을 재촉하는 냉혹한 눈초리들 뿐이었다.
“소인……. 그 분과 약조하였습니다. 이 물건을 돌려드릴 뿐 아무 말도 하지 말 것을……. 가엾은 아랫것이 한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아량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겁에 질린 채였지만, 마부는 대갓집 하인으로서의 체모를 잃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정중한 애원에도 공작은 물러서지 않았다.
“이 돌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거나, 이 사건이 이렇게 많은 귀족분들 앞에서 일어나 이 고귀한 분들의 심사를 어지럽히지 않았었다면 그럴 수도 있었겠지. 허나,”
늙은 공작의 어투에는 위엄이 있었고, 눈빛은 날카로웠다.
“이 돌은 이미 이렇게나 주목받고 있고, 여기 모인 분들도 이 때문에 흥겨웠어야 했을 파티를 마음껏 즐기지 못하셨네. 이대로 넘어간다면 여러 모로 심려가 많으셨던 소츠미야 부인께도 예의가 아니야.”
마부는 여전히 안절부절 못한 채, 입을 뗐다 다물었다를 반복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것을 보던 공작이 얼굴을 찌푸리며 한 마디를 더 할 찰나였다.
“가엾은 마부를 이제 보내주십시오. 제가 그에게 그 돌의 위치를 알려주었습니다.”
한 남자가 돌을 보기 위해 겹겹이 모여 있던 사람들을 헤치고 홀의 중앙으로 나섰다. 바로 웃음기 없는 진지한 얼굴의 아데크레노헨이었다.
파티홀 안의 사람들은 다시 한 번 술렁이기 시작했다. 왕궁 파티 때 참석했던 사람들 중 그의 조사를 떠올린 반쯤은 못마땅한 얼굴을 했고, 조사에 대한 그의 설명을 떠올린 반쯤은 미심쩍지만 무언가 대답이 나올 것을 기다리는 얼굴이었다. 아테트라이에나 주변에 있는 청년들은 마부가 등장했을 때의 몇 배나 되는 적의를 얼굴 가득 품고 아데크레노헨을 노려보았다. 아테트라이에나는 재미있게 되어가는 상황에 호기심을 느꼈다.
“‘역시’ 자네로군.”
공작은 아데크레노헨에게 시선을 던지며 짧게 뱉었다. 거의 동등한 지체를 지닌, 친분이 없는 성인에게 하대하는 것은 실례되는 태도였으나 아데크레노헨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했다. 공작은 침착하게 시선을 맞받는 아데크레노헨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자네, 어떻게 돌이 있는 장소를 알아냈나? 혹시 범인이 돌을 숨기는 장면을 목격했나? 그럴 리 없겠지.”
공작은 아데크레노헨에게 노골적으로 비아냥거렸다.
“이번에도 자네의 그 총명한 머리로 알아낸 것이지, 그렇지? 그 뭐라더냐, ‘가확적’ 수사? 가학? 과학? 그래, 그게 어느 짝에 필요한 물건이던가? 유명을 달리한 분의 신체를 뒤적거리고,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한 존귀한 분들을 가둬놓는 것? 그런 품위 없는 짓을 한다면 누구라도 없어진 물건의 행방을 찾지 못할 리가 없지 않은가. ……사람들을 가두어 놓고 소지품을 검사한다면.”
공작의 얼굴이 순간 흐려졌다. 애써 떠올린 독기와 빈정거림이 걷히고 나니 공작의 얼굴에는 애초부터 감돌던 패배의 빛이 짙어졌다. 그러나 그것을 알아챈 것은 파티홀 안의 사람들보다 긍지 높은 공작 자신이 빨랐다. 그는 재빨리 표정을 바로 하고 다시 아데크레노헨을 쏘아보았다.
“그러나 우리들은 존엄한 귀족. 그런 부당한 처사를 묵묵히 견뎌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래, 이번에는 들쑤실 시체도 없었고 사람들을 묶어 두지도 못했고 주머니 검사도 못 했는데 어떻게 돌의 위치를 알아냈다는 거지? 말씀해 보시게나, 똑똑한 소년이여.”
말 끝맺음에 가서는 완전히 놀리는 투다. 그러나 아데크레노헨의 표정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공작이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자 입을 열었다.
“말씀하신 대로 저는 이번 일과 관련해 충분한 자료를 수집하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저는 마부에게 돌을 가져오라고 지시할 때까지도 그 위치를 정확히 알지는 못했습니다. 그저 추측이었습니다. 돌이 다행히 제가 생각한 곳에 있었던 것뿐입니다.”
아데크레노헨의 시선이 공작의 어깨 너머로 향했다. 잠시 또 정적이 흘렀고, 자신의 뒷말을 재촉하고 있는 모두의 시선에 굴복한 아데크레노헨은 말을 이었다.
“제가 얻은 자료는 귀중한 돌이 없어진 직후 공작 부부께서 소츠미야 부인께 하신 말씀을 들은 것과 바뀐 돌뿐이었습니다. 그 돌은 아까 소츠미야 후작 부인께 부탁드려 제가 얻었는데, 이 정원석에 관해서는 누가 어떻게 처분해도 상관없다는 공작님의 허락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공작의 얼굴이 순간 찡그려졌다. 그러나 그까짓 바꿔치기당한 돌, 어쨌단 말인가?
“그 정원석을 살펴본 결과, 매우 깨끗하게 세척되어 있더군요. 흙 같은 건 묻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모양도 아무렇게나 생긴 것이 아니라, 모나지 않고 동그스름한 편이더군요. 또한, 오늘 공작 부인께서는 귀중한 보석이 잘 있나 확인하기 위해 자주 핸드백의 무게를 확인하셨고, 핸드백에서 벨벳 주머니를 꺼내실 때도, 심지어 주머니에서 돌을 꺼내실 때도 별다른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셨지요. 그래서, 저는 이 정원석이 귀중한 돌과 바꿔치기 위해 사전에 준비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보물은 입수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이고, 지체 높으신 분들께 선보이는 것도 오늘이 처음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 돌의 대체적인 크기와 무게를 아는 사람이라면 얼마간은 범위가 좁혀지지요. 하지만 이것으로 좁힌 범위는 그다지 신뢰성이 없습니다. 이 보물이 공작님의 손으로 아스페라노덴에 들어오기 전에 이 돌에 대한 정보가 퍼졌을 가능성도 없지 않으니까요.”
아데크레노헨은 말을 계속하며 손에 꺼내들었던 회색 정원석을 들어올렸다.
“다음은 정원석에 향기가 배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 돌은 보시다시피 다공질도 아니고 단단한 편입니다. 그런데도 이 돌에는 향기가 꽤 배어 있었어요. 외람된 말씀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돌에 배인 향기는 공작 부인의 향기와 같았습니다.”
공작 부인의 향기를 운운하다니, 망측한 언사라며 술렁일 법도 했지만, 의외로 파티홀 안은 조용했다.
“게다가 공작 부인께서 직접 말씀하신 선명한 아침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부인께서는 이 파티에 오기 위해 마차에 오르시기 직전 핸드백 안에 향수를 마지막으로 뿌리셨다고 하셨고요.”
이 말에 대해서 반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스페라노덴의 귀족 여성이라면 외출 직전에 채비의 마무리로 소지품에 향수를 뿌리는 것이 통례였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나면, 타인의 앞에서 단장을 고치는 것을 수치로 여기는 귀족 여성들은 소지품에는 물론 몸에도 다시 향수를 뿌리는 일이 드물었다.
아데크레노헨의 말은 계속되었다.
“그렇다면, 향기가 배기 쉽지 않은 이 정원석에 향기가 배어 있었다는 것은, 적어도 이 돌이 공작 부인의 핸드백 안에 꽤 오랜 시간 있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러니까, 도난당한 보물과 비슷한 크기와 무게로 일부러 준비되어 있었던 이 돌은 적어도 공작 부인께서 이 파티홀에 들어서기 전에 부인의 핸드백 속에 들어 있었던 것이고, 향기가 배어 있던 정도로 보아서는 부인의 마차행 역시 이 돌과 함께였다고 생각됩니다. 부인, 부인께서는 마차 안에서나 혹은 마차에서 내리시고 이 파티홀 안에서 보물이 들어있다고 생각되는 주머니를 꺼내시기 전까지 핸드백을 몸에서 떼어놓으신 일이 없으시겠죠?”
공작 부인은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공작 부인께서는 아까 소츠미야 부인께 분명, 핸드백에 필요한 물품들을 챙기시면서 보물 역시 확인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핸드백 안에 있던 보물을 평범한 돌과 바꿀 수 있던 사람은, 핸드백을 내내 손에서 놓지 않으셨던 공작 부인이실 텐데 그럴 리는 없겠지요. 공작 부인께서 핸드백에 보물을 넣으시고 나서 이 핸드백을 혼자 맡을 수 있었던 사람이 공작 부인 외에 또 누가 있었을까요…….”
아데크레노헨은 다시 한 번 공작의 어깨 너머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사색이 되어 떨고 있던 공작 부인의 하녀가 울음을 터뜨렸다.
공작 부인이 신음 소리를 냈다.
“로체가……? 말도 안 돼!!”
공작 부인이 외쳤다.
“로체는 제가 특별히 믿고 아끼는 아이예요! 무엇보다도 이 아이는 근본 없는 아이가 아니에요. 대대로 우리 라오네드 공작가를 섬겨 온 유서 깊은 집사 가문의 아이라구요! 그런 로체가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잖아요?”
얼굴빛이 변한 공작 부인이 로체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로체, 정말 그랬니? 네가 그랬어?”
“잘못했어요! 마님, 정말로 잘못했어요!”
로체는 엉망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공작 부인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오열했다.
“네가 그랬어? 왜?”
공작 부인은 여전히 믿어지지 않는 듯 여전히 울고만 있는 로체를 내려다보았다.
“왜 하필 오늘 같은 날?”
마침내 공작 부인은 원망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 원망은, 하녀로 인해 라오네드 공작가의 체면을 깎은 데서 오는 것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었지만, 공작 부인의 목소리에서 묻어나는 작은 떨림은, 일이 이렇게 커져 버려 용서하고 싶은 하녀를 용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른 것에서 비롯된 것이 분명했다.
“그 하녀 말야. 이름이 로체랬나?”
소츠미야 부인의 파티 며칠 후, 에느 체르에이유가 친정집의 한 살롱에서 긴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어 나른하게 신문을 뒤적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만년필에 잉크를 채우던 아데크레노헨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는 것을 확인하듯 반쯤 뜬 눈으로 그를 흘끔 쳐다본 후 말을 이었다.
“알고 보니까, 모 후작 댁 하인하고 배가 맞아 그랬댄다. 하인배라 쳐도 유서있는 가문의 아가씨, 이미 혼처가 정해져 있는 터에 눈맞은 남자랑 결혼은 못 하겠고, 시간 끌다간 배가 남산이 될 것 같아서 그전에 행방불명되고 싶었대나 어쨌대나. 그 집 보물들이 하나같이 몇 중 자물쇠가 꽉꽉 채워진 금고에서 나올 줄을 모르니까 어째 선보인다고 여기저기 광고된 보물이라도 노린 모양인데. 계집애가 머리가 나쁜 거지. 공작 부인도 그래, 대체 왜 처음부터 네 이년 네년이 그랬지! 하고 나서지 않은 거야? 상황으로 봐서 뻔할 뻔자잖아? 자기 하녀인데 좀 족쳐봐야 누가 뭐라 그러나?”
“공작 부인은 그 하녀를 꽤 믿는 눈치였어.”
“하긴 그 가문, 좋은 하인들을 꽤 많이 배출하는 가문으로 유명하긴 해. 지방 남작보다는 위로 칠 정도니까. 가문이 좋다고 사람까지 좋으란 법 있나. 젠장, 다들 왜 그리 가문에 목을 거는 거냔 말야. 가문이 밥 먹여 주나? 아, 뭐, 밥은 먹여 주는구만.”
귀족의 세도가 하늘을 찌르는 아스페라노덴에서 단 넷밖에 없는 공작가의 영애와 어울리는 말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그런 것에 전혀 개의치 않는 것이 에느 체르에이유, 그 사람답다고 할 만하다. 에느 체르에이유는 등에서 미끄러진 쿠션을 다시 어깨 쪽으로 고쳐 괴며 말을 이었다.
“어쨌거나 소식통에 의하면, 아데크레노헨, 네 평판은 꽤나 올라간 모양이야. 어쨌거나 네 식대로 해서 한 건 올렸으니까 귀족들도 이제 네가 하는 일에 어느 정도는 신뢰가 생긴 모양이고. 솔직히 여기 귀족들이 멍청한 거지, 어디 이번에 해결한 사건도 네가 똑똑해서 해결한 거냐? 누구라도 알 만한 건데, 사람들이 체면이다 가문이다 뭐다 뭐다, 남의 집 문제는 못 건드려, 자기보다 지체가 높으면 그 집 하인도 아이구 무서워, 다들 눈에 깜장천이라도 일곱 겹씩 두르고 있는 건지 뭔지. 덕분에 대학 다닐 때만 해도 어리버리의 대명사였던 네가 명탐정 되게 생겼다 야. 아, 이거 속 뒤틀리는데. 이 사람들한테 추리소설이라도 번역해다 읽혀야지 원.”
에느 체르에이유는 정말로 심화가 치미는지 발 쪽에 걸리적거리던 쿠션을 발로 차서 떨어뜨렸다.
“카에즈, 너무해.”
“너무하긴 내가? 그럼 뭐, 좋은 말만 듣고 싶었어? 여기저기서 인기 올라가는 중이니까 한 명한테 욕 먹는 것쯤 일도 아니잖아?”
에느 체르에이유는 자신의 말에 짐짓 기분이 상한 체하는 아데크레노헨을 달래기라도 하듯 긴 팔을 뻗어 그의 머리를 통통 쳤다. 그러나 막상 당사자로서는 자신의 인기 운운하는 말이 얼떨떨한 모양이었다.
“무슨 소리야? 인기라니.”
“얼레? 몰랐냐? 하긴, 몰랐을 것도 같다. 역시나 어리버리~. 여기 붙어 있고 싶으면 자기 평판은 좀 챙겨 알아둬야 한다구.”
에느 체르에이유는 비스듬하게 눕듯이 앉아 있던 자세를 고치고 소파에 바로 앉았다.
“뭐, 왕가와 공작가 하나 후작가 하나 업어서 기세 눌리지 않아도 되는 건 차치하고, 문제는 그런 세력 놀음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이라는 건데……. 일단 그 사건 이후로 다시 봤다는 분위기가 대세야. 그리고 너랑 개인적으로 만나 본 사람들도 인상은 좋게 받은 것 같고……. 그리고 소위 신학문 한다는 층에서도 호평. 얼마 전부터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중반까지, 젊은 귀족들을 중심으로 북동쪽 대륙으로 유학가고 싶다는 애들이 늘어났잖아? 뭐, 실제로 유학을 떠난 사람 중에서 돌아온 사람은 아직 나랑 우리 신랑밖에 없지만.”
그랬다. 에느 체르에이유와 함께 유학을 떠난 축은 몇 되었지만, 새롭게 배운 학문이 아스페라노덴에서 크게 소용되는 것도 아니고 트인 그네들 시각에 살기 좋은 곳은 오히려 고향이 아닌 신천지라, 대부분이 그곳에서 자리를 잡고 살아가느라 되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었다. 아마 남편의 고집이 아니었다면 에느 체르에이유도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었다.
“어쨌든 그 어린 애들 눈에는, 자기 또래로 ‘보이는’ 네가 그 접하고 싶은 신학문으로 무장한 채 왕가의 신임까지 얻으니 상당히 대단해 보였던 모양인데. 일부는 너를 내심 동경의 대상으로까지 삼기 시작한 것도 같고……. 뭐 어린 애들뿐 아니라 간접적으로라도 다른 대륙의 학문을 공부했던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네 편을 들어 주고 있는 것 같아. 또 이건 의외의 상황인데, 네가 유행과 외모에 끌려 평정을 잃는 시시한 사내가 아니라는 말이 돌아 여자아이들에게 꽤 인기가 생긴 모양이야. 시대의 아이돌 라일런즈 양에게 혹하지 않고 용의자로까지 지목해 버린 네가 위대해 보였나본데. …그렇다고 해서 안심하기에는 일러. 젊은 축들이 널 동경할수록, 바다 건너 학문을 한 사람들이 네 편이 될수록, 어린 여자애들의 환심을 살수록, 나이 많고 보수적이고 간수할 딸이 있는 사람들은 네게 향한 경계와 미움이 강해지게 마련이야. 라일런즈 양 건드린 일로 미움받을 일이 남은 건 말할 것도 없고. 앞으로는 더더욱 조심해서 빈축 살 일이 없도록 해야 해.”
에느 체르에이유는 미간을 좁히고 눈동자를 굴렸다. 아무래도 머릿속에 모종의 계산이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았다.
“이 마당에 그 보수적이고 나이 많은 구시대의 잔존물 중 하나만 네 편으로 끌어들이면 쉬워지는데 말이지. 가능한 한 높은 걸로 물면 이쪽의 입지는 말할 나위 없이 굳어진다……, 잘만 하면 최소한 후작 작위쯤은 우스운 세력을 확보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근본도 모르는 이방인 주제에 말이지.”
에느 체르에이유가 이미 아데크레노헨은 안중에도 없이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들려는 찰나, 살롱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에느 체르에이유는 대번에 인상을 썼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들어오라고 말한 것은 아데크레노헨 쪽이었다.
조심히 살롱의 문을 열고 들어선 것은 에느 체르에이유의 비서격인 하녀였다. 그녀는 은쟁반에 초대장 한 장을 받혀 들고 분명한 목소리로 전했다.
“라오네드 공작 부부께서 아데크레노헨 베르노 페리노에라 씨께 전하십니다. 공작 부부께서는 일전에 보물을 찾는 데 힘을 빌려주신 페리노에라 씨께 감사를 전하고자, 페리노에라 씨를 저녁식사에 초대하시며 앞으로 더욱 돈독한 관계를 맺을 것을 제의하셨습니다. 그 자리에는 페리노에라 씨 덕에 파티의 불명예를 씻을 수 있었다고 말씀하시는 소츠미야 후작 부부께서도 참석하실 예정이라고 합니다.”
말을 잊은 에느 체르에이유와 아데크레노헨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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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갑작스레 끊어 버려 죄송합니다 (_ _)
그간 읽어 주신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u/////u
당분간 장편 연재는 하지 않을 생각이구요, 간혹 내키면 단문 조각이나 올릴게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ㅂ^//
# by | 2009/01/11 18:34 | - scriptura (글)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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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바빠서 못읽다가 읽으러 찾아 왔는데, 흥미진진한 장면에서 끊어졌군요.
언젠간 다시 이어지길 기다리겠습니다^^
이 시리즈 연재하면서 가장 관심 있게 읽어주신 ZOON님, 정말로 감사드려요~!
글 쓰는 사람으로서는 재미있게 읽어 주시는 독자분이 계시는 것만큼 기쁜 일도 없답니다. ^^
이 글 뒷이야기든, 다른 시리즈든 앞으로도 열심히 쓰겠습니다 +ㅅ+
잘 봤습니다! /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