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06일
<오르쾨르텐 이야기> 제 8편
기다려주신 분들께 그저 고개 숙여 사죄를 ㅠㅠㅠㅠ
요새 어쩐지 좀 지쳐 있어서 창조적인 일 하기가 힘드네요.
포스팅하기도 그림 그리기도 힘들어요. 힘들달까, 손에 안 잡혀요. 왜 이런 걸까요?
이러다가 읽어주시는 분들 다 끊기겠구 ㅠㅠ
앞으로는 잘할게요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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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은 아직 이 성 안에 있다.
상류층 중에서도 최상류층만이 모인 이 파티에는, 참가한 사람이 기껏 오십 명을 밑돌았다. 그나마도 북동쪽의 초청 인사들을 제외하면 40명선, 때문에 참가자들 어느 하나 바르베르덴과 친분이 없는 자가 없었고, 따라서 파티장을 떠나야 할 일이 있다면 물론 바르베르덴에게 인사를 하러 오거나 최소한 다세르노에에게라도 전언을 남겼을 것이었다. 그러나 파티가 시작된 이래 그런 사람은 없었다. 따라서 누군가가 ‘비정상적으로’ 이 파티장을 뜨지 않은 이상, 파티에 참석한 전원은 이 파티장 안에 있을 것이고, 또한 범인도 이곳에 함께 있는 셈이었다. 아데크레노헨이 쇼쇼코의 존재를 밝혀 낸 이상 한노 교수의 사망시간은 한 시간 전에서 한 시간 반 전으로 좁혀졌다. 아데크레노헨과 에느 체르에이유, 그리고 르 뵈시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그저 묻어 주어야만 할 것으로 생각했던 시체에서 이렇게 많은 사실을 알아내었다는 것에 놀랄 뿐이었다. 코도노티오로서는 북동 대륙에 범인이 건너간 것으로 해서 슬쩍 덮어버릴 수 있었던 사건을 아데크레노헨이 굳이 한 번 더 뒤집어 새로 조사해야 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품은 모양이나, 바르베르덴 왕자는 아데크레노헨의 지식과 수사방식에 크게 고무되어, 그에게 이 사건의 수사를 위임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이러한 결정에는, 한노 교수가 단순히 학자일 뿐 아니라 토헤인의 대표적인 우익 인사로서 토헤인 왕실의 최측근이라는 에느 체르에이유의 귀띔도 아주 크게 작용했음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바르베르덴으로서는 이 사건을 최대한 성실하고 투명하게 처리함으로서 대륙간 마찰의 소지를 없애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아데크레노헨은 수사권을 위임받자마자 이곳저곳에 기민하게 지시를 내렸다. 일단 과연 시체에 투입된 물질이 쇼쇼코인가 아닌가의 판별은 학사 르 뵈시가 맡기로 했다. 그는 왕자에게 하직을 고하고 시체를 둘러멘 왕궁 하인 몇 명과 함께 귀가 마차에 올랐다. 근위대장과 보안경비대장에게는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이 이 건물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지키고, 한 명 한 명의 소지품 검사와 알리바이를 조사하도록 지시했다. 치안총감인 코도노티오도 본래는 이 임무에 합류시킬 생각이었으나, 자존심도 텃세도 강한 치안총감이 출신도 모르는 꼬마 녀석의 되지도 않는 명령에 복종할 생각은 없다는 듯 모든 지시를 완강히 거부하는 터에, 그는 수사에서 제외시키기로 하였다. 그리고, 귀족의 하인들에 대한 조사는 근위부대장과 보안경비부장이 맡기로 하였다. 일이 이쯤 진행되는 것을 보고 왕자는 만족한 듯 자신의 처소로 돌아갔다. 그로서는 처음 맞는 이러한 사건이 무척이나 피곤했던 듯, 한시라도 빨리 쉬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그는 세라코에노와 다세르노에도 데려가겠으니, 아데크레노헨이 이 곳의 일은 전부 알아서 해도 좋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물론 아데크레노헨은 그에게, 만일의 경우 힘을 빌려주겠다는 다짐을 받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발코니에는 에느 체르에이유와 아데크레노헨, 단 둘만이 남았다.
에느 체르에이유는 생각에 잠긴 듯한 아데크레노헨의 옆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나직하게 그를 불렀다.
“야.”
“응?”
아데크레노헨은 생각은 생각대로 계속하는 채, 그녀의 부름에 무심히 대답했다. 이에 에느 체르에이유는 손을 들어 아데크레노헨의 뒤통수를 쳤다. 그제서야 아데크레노헨은 얼굴을 찌푸리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너 많이 컸다? 누님께서 부르시는데 쳐다보지도 않아? 이걸.”
에느 체르에이유가 빙긋빙긋 웃으며 건들거리는 투로 말했다. 아데크레노헨은 푸훗, 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그녀를 가볍게 포옹했다.
“카에즈, 하나도 안 변했어.”
“뭘, 많~이 늙었지. 그러는 너야말로 어째 얼굴이 그때 고대로냐? 떠돌아다니더니 불로장생 약이라도 찾은 거야? 누가 널 보고 스물여섯이라고 하겠냐, 스물여섯이라고. 딱 갓스물이다. 아직 청춘이구나. 좋~겠다.”
에느 체르에이유는 아데크레노헨의 얼굴을 가볍게 톡톡 치며 농담을 걸었다.
“하여튼 몇 년만에 보는 친구를 이런 데서 만나다니 상황 참 뭐하다.”
“난 너희 집에 계속 있었는데.”
“알아, 우리 엄마가 네 칭찬이 너무 늘어져서 짜증나 죽을 지경이야. 엄마 잔소리 때문에 아주 친정 가기가 무섭다니까.”
고개를 저으며 너스레를 떠는 에느 체르에이유에게, 아데크레노헨은 가볍게 미소지어보였다.
“너에게 기대가 크셔서 그래. 너도 잘 알잖아.”
“알고 말고~.”
에느 체르에이유가 진심으로 긍정하는 것인지, 아니면 비꼬는 것인지 모를 어투로 말했다. 실은 그 둘이 반반쯤 섞여 있을 것이다.
“야. 그런데 나한테는 일거리 안 주냐? 나도 뭐라도 해야잖냐.”
아데크레노헨은 대학교 때 버릇 그대로 말끝마다 건들거리는 에느 체르에이유를 보면서,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의 품위 있는 말투나, 단호하면서도 우아했던 행동이 없던 일처럼만 느껴져서 다시금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다가, 자신의 말에 웃는 것으로 착각한 에느 체르에이유의 얼굴이 험악해지는 것을 깨닫고는 황급히 웃음기를 지웠다.
“아이켓 가의 포에론 양 알지?”
“당연. 그 멋만 부리는 꼬맹이.”
에느 체르에이유가 알폿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교양이나 공부에는 전혀 흥미가 없고 치장에만 전념하는 어린 여자아이들을 질색했다.
“처음에 들렸던 비명 말인데, 쓰러진 궁녀의 것인지, 아니면 아이켓 양의 것인지 알 수가 없어. 그것이 아이켓 양의 것이든 아니든, 우리보다 먼저 발코니에 나갔으니까 뭔가 다른 것을 봤을 수도 있으니 아이켓 양에게 무엇인가 보았는지 물어봐 줘. 그리고 쓰러진 궁녀는, 분명 무엇인가를 보고 쓰러졌을 테니까, 아이켓 양의 조사가 끝나면 그 궁녀도 조사해 주고. 네젯 가의 카이올레이네 양에게 궁녀의 행동이나 말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해 달라고 했으니까 그 메모가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어.”
“알았어.”
에느 체르에이유가 고개를 끄덕였다.
“심리학에 일가견이 있는 나야. 꼬맹이 두 녀석 상대하는 거야 아무것도 아니지. 금방 해치우고 돌아올 테니까 다음 일거리나 준비해 놓고 기다리라고.”
평소대로 호언하는 에느 체르에이유였다.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남기고 호기롭게 돌아서서 당당하게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아데크레노헨은, 무엇인가 결심한 듯 파티홀로 향하기 시작했다.
“글쎄 저는 아무것도 본 게 없다니까 그러세요, 체르에이유 양…….”
“에느 체르에이유입니다, 아이켓 양.”
에느 체르에이유가 한숨을 쉬며 포에론을 쳐다보았다. 이 아스페라노덴 최고의 여성 지성 앞에서, 자기 딴에는 진보적이고 깨인 여성으로 비치고 싶어 안달하는 것은 알겠는데, 역시나 그런 것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닌 터, 에느 체르에이유는 이 거만하고 멋부리기 좋아하는 여자아이에게 점점 짜증이 나고 있었다.
게다가 이 아이와의 조사는 벌써 몇 시간 째 같은 자리만 빙빙 돌고 있었다. 자신이 본 것만 명쾌하게 말하면 될 텐데도, 포에론은 말에 멋을 부리느라고 자꾸 말을 바꾸며 중언부언했다. 에느 체르에이유로서는 답답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분명 아이켓 양이 발코니에서 홀로 돌아와 궁녀가 쓰러져 있음을 알리기 직전, 발코니에서는 비명 소리가 들렸어요. 그것이 아이켓 양의 것인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의 것인지, 그것을 알고 싶은 것입니다.”
“제가 아니에요. 결단코.”
포에론이 팔짝 뛰기라도 할 듯 강하게 부인했다.
“제가 홀로 사뿐히 발코니에 나갔을 때-그래요, 달빛, 은은하고 로맨틱한 달빛을 쐬러 말이지요- 저야말로 누군가의 비명 소리를 듣고 놀라지 않았겠어요? 그 커다랗고 높은 소리에 머릿속이 울려 버리고 말았답니다. 귓속에 있다는 막이 터져 버리는 줄 알았어요.”
고막이겠지, 이 꼬마야. 에느 체르에이유는 있는 지식이란 지식은 모두 긁어모아 뽐내는 포에론을 보며, 여지껏 치장만 하기 좋아하는 아이들을 싫어했던 일을 뉘우쳤다. 그런 아이들은 이렇게 잘난 체하고 싶어 안달이 난 아이와 비교하면 양반이었다.
“그런데 막상 가 보니 쓰러진 건 한낱 궁녀에 지나지 않겠어요? 그래서, 괜히 놀랐다 하고, 그냥 돌아왔지요…….”
포에론은 여기까지 말하다가 갑자기 자신이 조사받고 있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듯, 샐쭉해져서 에느 체르에이유를 응시했다.
“그런데 에느 체르에이유께서 이번 사건의 수사관이신가요? 어머, 여성분이신데.”
그 말투는 마치, 여성인 에느 체르에이유가 사건 수사를 떠맡게 되다니 정말 안 됐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에느 체르에이유는 화가 치미는 것을 참으며 미소를 띄웠다. 너 같은 것 때문에 이 땅의 여권이 신장될 기미가 없는 거다, 이 든 것 없는 꼬마야.
“저는 수사를 보좌할 뿐입니다. 수사관은 페리노에라 씨세요.”
“페리노에라 씨라고요? 어머, 정말……?”
포에론은 의외라는 듯 눈망울을 굴렸다.
그 때였다.
포에론이 갑자기 가슴을 쥐고 쓰러진 것이었다. 에느 체르에이유는 놀라서 황급히 달려가 그녀를 안아 일으켰다. 그녀가 응급 처치를 위해 포에론의 가슴과 허리를 압박하는 코르셋을 풀려고 하는 찰나, 포에론이 가까스로 에느 체르에이유의 어깨를 짚고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을 본 에느 체르에이유는 깜짝 놀라 무의식중에 몸을 뒤로 뺐다. 그녀가 제정신인 것은 확실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눈은 이상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어디엔가 덮어씌워진 듯, 그녀의 금갈색 눈은 슬퍼 보이기도 하고, 텅 비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녀가 에느 체르에이유에게 더욱 몸을 숙이고 그 어깨를 붙잡아 자신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전 봤어요. 에느 체르에이유, 이제 기억나요. 전 봤어요!”
“보다니, 뭐, 뭘 봤는데요?”
에느 체르에이유는 그 기세에 눌려, 자신이 압도당했다는 사실까지 잊어버렸다.
“그녀를 봤어요. 그 달빛처럼 차가운 푸른 눈. 그 눈에 든 달빛은 날카로운 초승달, 비수 같은 그믐달……. 봤어요. 저는 봤어요. 테라스 아래에서, 갑자기 위로, 내 눈 앞에, 휙 하고 나타나서……. 그림자 같은 검은 옷을 입고, 형체 없는 손을 하고, 무섭게 파란 눈이 내 앞에 떠 있어요.”
포에론은 열에 들뜬 환자처럼, 아무 말이나 마구 주워섬기고 있었으나, 에느 체르에이유는 어느덧 평정을 되찾고 침착하게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파란 눈, 무섭게 파란 눈, 소름끼치게 아름다운 파란 눈, 한을 풀고 싶어하지만 한을 쌓아가고 있어요. 아니야! 그건 아니야!! 아아, 안돼요. 페리노에라 씨가…….”
“페리노에라?”
에느 체르에이유는, 포에론의 입에서 페리노에라라는 이름이 나오자 깜짝 놀라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데크레노헨과 이 사건이 어떤 연관이 있다는 말인가?
“그의 갈색 눈. 그의 잿빛 눈. 그의 은빛 눈. 그의 푸른 눈. 한 번 깨지고, 두 번 깨지고, 세 번째 깨져서 파편은 성으로 가요. 그곳에는 아름다운 소녀가 기다려요. 반짝이는 빨간 입술이 너무 예뻐. 너무 예뻐. 너무 예뻐서 무서워. 그녀는 손에 검과 창을 들고, 그림자처럼 빠르게 날아가요. 그녀는 가는 곳마다 빨간 꽃을 뿌리지만 사실은 슬프대요. 눈물과 꽃잎이 섞여서 붉은 방울은 성으로 가요. 마지막은 그들 차례, 그녀와 그가 마주 보고 서 있어요. 마치 포획자와 포획물같이. 하나하나 없어지고 나서……”
“무슨 소리야!?”
에느 체르에이유가 포에론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도대체 누가 포획자고 누가 포획물이라는 거야? 응? 알아듣게 말해!!”
에느 체르에이유는 두 손으로 포에론의 뺨을 찰싹찰싹 때렸다. 포에론의 말은 점점 이상한 주문같이 변하고 있었다. 옛날 책의 한 구절을 읊는 듯, 아니면 구전민요를 읊는 듯, 처음에는 그저 헛소리의 나열이라고만 생각되었던 말들이 가면 갈수록 이상한 곡조까지 점차 붙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새 그것을 듣는 에느 체르에이유의 머릿속에까지 포에론의 말들이 영상으로 나타나려는 것 같았다. 에느 체르에이유는 자신마저 잠식해버리려는 이 기괴한 최면 상태를, 일 초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이미 숙녀고 체면이고 뭐고 없었다. 분명 그녀는, 옆에 술잔이라도 있었으면 포에론에게 즉각 끼얹었을 것이다.
다행이도 포에론은, 몇 대 맞지 않아 마지막 몇 마디를 내뱉고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리고 뺨이 발그레히 부푼 포에론의 얼굴을 무릎에 그냥 얹은 채로, 에느 체르에이유는 충격을 받은 채로 망연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포에론의 마지막 몇 마디가 그녀의 머릿속에서 몇 겹으로 울리고 퍼졌다. 그녀로서는 드물게, 충격으로 입술이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막연히 가능성을 두어 오던 무서운 상상이 현실로 다가올지도 모른다는 예감에 어깨를 떨었다.
그러나 워낙 심지가 굳은 그녀였다. 에느 체르에이유는 휘청거리는 다리를 주체하며 간신히 일어나, 기절한 포에론을 안아다가 소파에 뉘어 놓고 그녀를 간호하게 할 요량으로 하녀를 부르는 벨을 눌렀다. 그리고 어질거리는 머리를 잠시 벽에 대고 서 있다가, 마음을 굳게 먹고 파티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by | 2008/12/06 22:05 | - scriptura (글)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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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무슨 '가능성'일까요? 막연한 상상이라..
저 에느 체르에이유가 저정도로 흥분할정도면 뭔가 심각한 일일듯해요!
그런데 이제 와서 보니까 쟤도 나름 귀여운 거야 ㅋㅋㅋ 나이 먹어서 너그러워졌나 나 ^ㅂ^
응, 저 '가능성'은 심각한 거 맞아. +ㅅ+ 아데크레노헨의 친구로서 바짝 긴장할 일이지!